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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지게 가난하다는 것


여러분들은 아는가?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것의 의미를. 부자의 기준이 저마다 다르듯,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난의 기준도 다른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당신이 그러하듯, 나도 힘들었다. 가난했다. 사실 더 참기 어려웠던 것은 가난이라는 것보다, 그 가난한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조언을 해줄 사람조차 없어서 그 시절을 그냥 허비했던 것... 그래서 나는 사회에 나오고도 10년을 더 허비해야만 했다. 


상처야, 힘든 것이야 얼마든지 극복하면 된다. 하지만 지나간 세월은 되돌릴 수가 없다. 시간이 있다는 것은 기회가 있다는 것. 돈도 그렇고, 상처도 그렇고 개인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서 얼마든지 되돌릴 수 있다. 한데 이 시간이라는 것은 되돌릴 수가 없다. 이 시간이 없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었던 가난을 돌이킬 기회조차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현재의 상황, 가난을 탓하는 데에 날려버린다고? 적어도 나는 이제 그러지 않는다. 


아이들이야, 거의 전적으로 보호자들의 영향이 절대적이고, 제대로 조언해줄 사람이 없다면 그럴 수 있다.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20살 성인이 되어서는 이제 부모 탓, 가난 탓 할 수가 없다. 지금 나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인생을 바꿀 수 있음에도 도전하지 않아서 현재 가난한 것인데, 누구를 탓한다는 것이 맞지 않다. 


나의 경우, 장의사 집 폐가에서 자랐다. 집안이 가난해서 컵라면 조차 자식들에게 양보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자랐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그 당시 돈으로만 수천만 원의 빚과 우리 자녀들을 남기고 떠나셨다. 


나는 이런 가난보다도 장의사 집이라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 차라리 직업이 없는 무직자였으면 이렇게 부끄럽지는 않았을 것인데, 나는 그 어린 나이에 장의사 집이라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서 친구들에게도 내가 사는 집을 숨기려고 했다. 물론 좁은 시골에서 친구들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친구들이 내가 사는 집을 모를 것이라 믿고 싶었다. 나는 어린 시절 거의 대부분 옷과 신발을 물려 입었는데, 하루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서 모임 약속시간 1시간 전에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도 집으로 되돌아간 적이 있었다. 


아무튼 나는 이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난, 가난의 기준을 잘 모르겠으나, 내가 겪은 가난은 충분히 극복이 가능한 것이었다. 물론, 나도 어린 시절 가난으로 날려버린 세월에 탓을 하고는 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도 별 것 아니더라. 낭비한 세월들보다 앞으로 맞이할 세월들이 더 소중하기에, 나는 현재, 미래에 집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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